2023년 9월 9일(토) 효창원 임시정부 요인 묘역에서 차리석 선생의 추도식이 열렸습니다.
차리석 선생은 평양 숭실중학교를 졸업하고 신민회에 가입해 독립운동의 길에 투신하셨습니다. 일제의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 사건 조작, 흔히 '105인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으로 3년간 옥고를 치르셨고 3.1운동에 참여하셨습니다. 이후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로 망명하시고, 독립신문 창간에 참여, 기자와 편집국장으로 활약하셨습니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 의정원회의 부의장, 상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셨고, 1930년 민족진영 독립지사들을 규합한 한국독립당에 참여하셨습니다.
1933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선임되어 항일투쟁에 노력하셨습니다. 1935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에 석오 이동녕 선생께서 선출되셨을 때, 비서장에 선출되어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도맡아 하셨습니다. 그리고 광복 후 환국을 준비하는 중에 서거하시며 그토록 바라던 해방된 조국 땅을 밟지 못하셨습니다. 그리고 효창원 임시정부 요인 묘역에 안장되셨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상해부터 충칭까지 이동하는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차리석 선생께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임시정부 곁에서 묵묵히 지켜주셨고 강한 책임감을 지니신 차리석 선생의 정신은 후손들의 본보기가 되어주셨습니다.
정정화 선생의 회고록 <장강일기>에 이렇게 적으셨습니다.
“광주에서 출발한 후부터 임정의 전체 살림은 임정의 비서장이었던 동암(차리석)이 주로 맡아 했다. 중국에 있는 동안 임정의 살림을 맡았던 분들 중에서 특히 우천(조완규)과 동암은 그 청렴함으로 존경을 받았는데, 두 분은 언제나 무명으로 된 중국식 두루마기 단 두 벌만으로 지내셨다...동암과 우천은 임정의 그런 궁색한 살림을 맡아하면서 자신들에게 특히 인색하게 대해 늘 가난에 찌든 모습들이었다... 동암은 귀국을 앞두고 중경에서 세상을 떠났다. 뒤늦게 본 아들 영조가 있었는데, 내가 만나본 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동암의 유해는 해방 후 백범이 아들 김신을 시켜 석오(이동녕)의 유해와 함께 모셔와 효창원에 안장시켰다. 동암의 청렴결백한 인품이 오늘에 전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차리석 선생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에 한없는 존경과 깊은 감사의 마음을 바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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