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명 중규(仲珪)로 1881년 경기도 장단(長湍)에서 태어났다. 보성전문학교를 졸업, 한때 정주(定州) 오산학교(五山學校) 교사로 있었다. 1908년 안창호(安昌浩)의 지도하에 박중화(朴重華)·최남선(崔南善)·김좌진(金佐鎭) 등과 청년학우회를 조직, 민중계몽과 민권신장운동에 진력하였다. 1919년 3·1운동 후 남만주에서 한족회(韓族會) 조직에 가담, 학무부장이 되어 재만(在滿)교포의 교화에 힘썼다.
1921년 임시정부의 재편을 요구하는 국민대표회에 반대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이승만(李承晩)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1923년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장에 선출되었다. 1935년 난징[南京]에서 김규식(金奎植)·지청천(池靑天)·신익희(申翼熙) 등과 한국혁명당을 조직, 독립투쟁전선의 통합에 노력하였다.
8·15광복 뒤 귀국하여 1946년 좌익세력의 연합조직인 민주주의민족전선 의장단의 부의장·상임위원을 지냈으며, 남조선과도입법의원에 선출되어 부의장을 맡았다. 1948년 국학대학(國學大學) 학장이 되었으나, 6·25전쟁 때 북한에 납북되었다. 그러나 1959년 북한 정권은 그를 반혁명분자로 몰아 숙청했다. 한국 정부는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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