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경성 발해유적지 ( 대전자 전투지 )
▲동경성 발해유적지
발해진의 지리좌표는 동경 129도 10분, 북위 44도 7분으로서 발해평원 중심부에 위치해 있는 발해국도 상경용천부의 소재지이다. 동경성 전투를 발해진 전투라고 볼 수 있다.
1933년 2월에 경박호 전역에서 대승한 한중연합군은 4월 중순 사도하자 전투에서 또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 후 일본은 발해국의 문화재를 도굴하고 경박호의 보물을 훔치며 산림을 남벌하여 본국으로 수송하기 위해 150여 명의 일군을 발해진에 주둔시켰다는 정황을 탐지한 연합군은 6월 3일 세벽 3시에 발해진을 포위하고 매복한 뒤 전선, 통신, 교통을 차단하고 영안으로부터 올 수 있는 중국병에 경각성을 높이며 후퇴하는 일군을 일격에 섬멸하기로 작전을 짰다. 동으로부터 진공을 개시하여 세시간의 치열한 전투를 벌여 일군이 북으로 퇴각하기 시작했으나 매복하던 아군에 의해 150여 명이 모두 섬멸되었다.
이것을 "동경성전투" 이라고 한다.
일본군은 150여 명의 시체를 발해진 북쪽 상경용천부 유적지에다 파묻은 후 앞면에다 "충혼비(忠魂碑)" 라고 쓰고 뒷면에는 "정기장산하(正氣壯山河)" 라고 쓴 비석을 세웠다. 광복후 중국정부의 관련부문의 지시에 의해 비석의 앞뒤 비문을 없애버리고 "발해상경용천부유지" 라고 새로 썼다. 이 전투를 지휘한 독립군부사령 황학수와 중국구국군 여단장 곽세제는 독립군사령관 이청천이 준비하고 있는 대전자 전투지로 이동하여 30년대 청산리 대첩 이라고 불리우는 대전자전투를 승리로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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