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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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명동학교
글쓴이 관리자
날 짜
07-08-30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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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학교는 1908년 4월 27일 명동촌에 설립된 민족교육기관으로 선전서숙의 민족교육정신을 계승하여 김약연 등의 애국지사들이 화룡현 명동촌에 설립하였다. 명동학교는 교육이념을 ‘독립정신’에 두고 신교육 체제를 세워 이를 구현하기 위하여 역사에 황이돈, 윤리에 박태항, 한글에 장지영, 체육 군사에 김홍일등을 비롯하여 여준, 최기학, 송창의, 박태식, 김철, 박경철, 김성환, 김근승 등이 국내외 여러 곳에서 차례로 초빙되어 교단에 섰다. 학제도 2년만에 여학교까지 병설하는 명동중학으로 개편, 민족주의 이념이 철저한 항일구국 인재의 양성에 심혈을 기울렸다.
명동학교가 민족주의 교육기관으로 발전함에 따라 그 명성이 국내외로 퍼져 입학생이 북간도 전역에서뿐만 아니라 러시아 연해주와 회령등지의 국내에서도 몰려와 크게 융성하였다. 학생들의 나이는 특별한 제한이 없어 15-16세의 소년에서 심지어 30-40세 장년까지 다양하였다.
이러한 명동학교의 융성을 질시한 일제는 1920년 10월 훈춘사건을 조작하여 만주파병을 감행하고 독립군과 항일민족운동지를 탄압 학살하면서 명동학교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한인들은 2년 동안에 걸쳐 정성과 재력을 모아 잿더미가 된 명동학교를 전보다 더 크게 증축하여 민족주의 교육을 계속하여 수많은 애국 인재를 배출하였다.
현재 명동학교는 그 터만 밭으로 변해 남아 있다. 1995년 건립한 명동학교기념비가 서있는데, 그 비에는 1908년 4월 27일 김약연을 비롯한 반일지사들이 창기한 근대교육학교로 이곳에 설립되었다‘라고 되어 있다. 비는 가로 38cm, 높이 82cm, 두께 13cm 크기이다.
명동학교는 폐교 이후 ‘명동소학’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명동촌에서 400미터 정도 떨어진 연길로 가는 길가에 신식건물로 자리하고 있다. 현재 이 학교는 학생들이 부족하여 폐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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