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관 경주(慶州). 호 성재(省齋)·시림산인(始林山人). 본명 성흡(聖翕). 1869년 12월 3일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885년 사마시(司馬試)에 급제, 1886년 가주서(假注書), 1887년 형조좌랑(刑曹佐郞)을 거쳐, 1888년 세자익위사익위(世子翊衛司翊衛)로서 서연관(書筵官)이 되었다.
1891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부승지(副承旨)에 이어 우승지(右承旨)에 올라 내의원(內醫院)·상의원(尙衣院)의 부제조(副提調)를 겸하고, 다시 참의내무부사(參議內務府事)·궁내부(宮內部) 수석참의(首席參議)를 역임하였으나, 1896년 장인인 김홍집(金弘集)이 살해되자 사직하였다. 1905년 외부교섭국장(外部交涉局長)에 재등용되고, 1906년 평남 관찰사로 나갔다가 1908년 한성(漢城)재판소장 ·법부 민사국장(民事局長)·고등법원 판사 등을 역임하였다.
1910년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자 만주로 망명, 류허현[柳河縣]에서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를 설립, 독립군양성에 힘쓰다가 1919년 4월 상하이[上海]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법무총장 ·재무총장을 역임, 1929년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창당에 참가, 초대 감찰위원장에 피선되고, 1933년 임시정부 직제개정 때 국무위원 겸 법무위원이 되어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1945년 8·15광복과 더불어 귀국하였다.
그 후 대한독립촉성회(大韓獨立促成會) 위원장으로 활약하다가 1948년 정부가 수립되자 초대 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의 비민주적 통치에 반대하고 1951년 부통령을 사임, 1952년 제2대 대통령선거에 민주국민당 후보로 입후보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53년 피난지인 부산에서 노환으로 죽었다. 국민장으로 정릉(貞陵) 남쪽에 안장되었다가 1964년 수유리로 이장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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