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1년 이동녕(李東寧)·이회영(李會榮) 등이 신흥강습소를 설치했는데 이것이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이었다. 얼마 후 통화현[通化縣] 합니하로 이전했고, 1913년 신흥중학교로 개칭했다. 교육과정은 중학반과 군사반을 두었다가 중학반은 폐지되었다. 1919년 5월 신흥무관학교로 개칭했고 부민단이 개편되어 조직된 한족회 산하의 학교로 발전했다.
신흥중학교 설립 당시 교장은 이세영(李世永), 부교장 양규열(梁圭烈), 학감 윤기섭(尹琦燮), 훈련감 이장녕, 교관으로는 본교 졸업생인 박두희(朴斗熙) ·성준용 ·백종렬(白鍾烈) ·오상세(吳祥世) ·원병상(元秉常) 등이었다. 그리고 통화현 쾌대모자, 린장현[臨江縣] 토애, 하이룽현[海龍縣] 성수하자에 분교를 두었다.
교육과정으로는 하사관반 3개월, 특별훈련반 1개월, 장교반 6개월 과정 등을 두었고, 폐교될 때까지 3,500여 명의 독립군을 배출했다. 이들은 청산리전투의 대첩과 주구배 주살 등 독립전선 각 분야에서 활동했다. 3·1운동 뒤에는 지청천(池靑天), 이범석(李範奭) 등 유수한 무관들이 이곳으로 왔으며, 입학지원생도 늘어났다. 그러나 일제의 가중되는 박해와 잇달은 사고로 1920년에 폐교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