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송정 푸른 솔은 홀로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 년 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기친 꿈이 깊었나
윤해영 작사, 조두남 작곡의 「선구자」를 8?15 전에는 「용정의 노래」라고 했다. 망국의 슬픔, 암울한 앞날을 견디지 못해 우리 겨레는 이 노래를 부르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
‘일송정’이란 이름은 비암산 벼랑의 바위 위에 소나무 한그루가 푸르름을 자랑하며 우뚝 솟아 있었던 데에서 유래 했다고 한다.
그 모양이 정자 같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며, 놀이철이면 이 소나무 아래 바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또 나무를 수호신(당산나무)처럼 여겨 치성을 드리기도 했다고 한다. 용정의 조선족 학생들은 비암산에 소풍을 나가 학교에서 배운 「학도가」같은 노래를 힘차게 불렀고 독립군이 일송정 옆을 지나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다.
조선 사람들이 일송정을 영물로 떠받들자, 일본군은 비암산 근처에서 사격 연습을 하면서 일송정 소나무를 과녁으로 삼았고, 일제는 일송정을 죽이기로 하고 나무에 구멍을 뚫어 후추가루를 가득 넣은 다음 큰 쇠못을 박았다고 한다.
근래 들어 백두산의 20년짜리 소나무를 옮겨 심었다.
|